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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글문화협회로 나아가는 까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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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글문화협회 다시 일으키는 잔치한말글문화협회로 나아가는 까닭오늘날 한겨레가 지닌 힘은 온누리에 큰 물결처럼 퍼져가고 있습니다. 남들은 부러워하는 ‘대한민국(대한겨레나라)’이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 겨레 모두가 이런 흐름을 잘 읽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욱 남들이 우러르고 부러워하는 쪽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잘 사는 나라, 좋은 나라’로 가는 길목에서 머뭇거리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왜 스스로 지닌 나라힘을 잘 키워내지 못하고 엉뚱하게 써버리고 있을까요? 그 까닭은 우리 겨레의 삶이 배어들고 가꾸는 열쇠를 스스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대한나라’를 다스리거나 열어가야 할 든사람부터 ‘겨레문화’의 바탕이며 그릇인 말과 글의 힘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말이나 한글을 잘 부려쓰고 갈닦기보다 오히려 ‘잉글리시’나 ‘니혼고’, ‘차이나’ 말과 같이 남의 나라말 익히기에 온 힘을 퍼붓자고 허튼 주장을 폅니다. 저희는 지나치다 못해 ‘나라를 죽이는 일’로 치닫는 흐름은 온 겨레 모두가 ‘한말’과 ‘한글’을 제대로 쓰지 않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100여 년 전 일찍이 말과 글은 나라와 겨레를 일으키기도 하고 사라지게도 하는 힘이 있다는 깨달음을 널리 펴신 한힌샘 주시경 님의 말씀을 되새기게 됩니다. 말은 사람과 사람의 뜻을 통하는 것이라 한 말을 쓰는 사람과 사람끼리는 그 뜻을 통하여 살기를 서로 도와줌으로 그 사람들이 절로 한 덩이가 되고 그 덩이가 점점 늘어 큰 덩이를 이루나니 사람의 제일 큰 덩이는 나라라 그러하므로 말은 나라를 이루는 것인데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니라 이러하므로 나라 마다 그 말을 힘쓰지 아니할 수 없는 바니라 글은 말을 담는 그릇이니 이지러짐이 없고 자리를 반듯하게 잡아 굳게 선 뒤에야 그 말을 잘 지키나니라 글은 또한 말을 닦는 기계니 기계를 먼저 닦은 뒤에야 말이 잘 닦아 지나니라 그 말과 그 글은 그 나라에 요긴함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으나 다스리지 아니하고 묵히면 덧거칠어지어 나라도 점점 내리어 가나니라 말이 거칠면 그 말을 적는 글도 거칠어지고 글이 거칠면 그 글로 쓰는 말도 거칠어지나니라 말과 글이 거칠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이 다 거칠어지고 말과 글이 다스리어지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도 다스리어지나니라 이러하므로 나라를 나아가게 하고자 하면 나라 사람을 열어야 되고 나라 사람을 열고자 하면 먼저 그 말과 글을 다스린 뒤에야 되나니라 또 그 나라 말과 그 나라 글은 그 나라 곧 그 사람들이 무리진 덩이가 천연으로 이 땅덩이 위에 홀로 서는 나라가 됨의 특별한 빛이라 이 빛을 밝히면 그 나라의 홀로 서는 일도 밝아지고 이 빛을 어둡게 하면 그 나라의 홀로 서는 일도 어두워 가나니라 그래서 그동안 있어 온 ‘한글문화협회’를 되살리면서 그 이름을 ‘한말글문화협회’로 바꾸고자 합니다. 글의 바탕인 ‘말’을 살리는 일, 곧 한겨레말을 바로 쓰고 살려 쓰면서 ‘한말글사랑’으로 온 겨레의 힘을 다시 모으고 가꾸려는 것입니다. 이에 다시 일으키는 모임에서 저희 뜻을 세 가지로 나누어 따로 밝힙니다. 첫째로 <한말글의 뜻넓이>에 비추어 보면, 한말글은 한말과 한글을 함께 아우를 수 가 있습니다. 그동안 써 온 ‘한글’은 ‘한글 이름, 한글 신문, 한글 사전’ 같은 말에서 보듯이 우리말을 적는 글자로서 한글을 써 온 것입니다. 말 속에는 입말과 글말이 있어 글자도 말의 일부로 들어가지만 글자 속에는 말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때로 ‘한글’을 넓혀서 써오기도 했으나 ‘한글’을 ‘한말’과 같이 보는 표현은 올바른 표현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둘째로 <한말과 한글을 부려 쓴 흐름>에 비추어 보면, 대한제국시대에 딴나라사람들 사이에 ‘한어(韓語)’란 말이 쓰이고 있었고, ‘한말’이란 말도 쓰였지요. ‘한어(韓語), 한말’이란 말은 요즈음의 ‘한국어, 한국말’과 같은 뜻을 머금고 있는데, 우리는 예로부터 썼던 ‘한말’을 살려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아울러 ‘한글’은 주시경이 ‘소리갈(1912)’에서 쓴 뒤로 김두봉(1915), 이규영(1913), 최현배(1922)에 이르기까지 ‘언문’ 대신 써 온 것으로 ‘한국글자의 홀로이름씨’로 오늘날 온누리에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우리글의 이름으로 ‘한말-한글’이 짝을 지어 쓸 수 있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셋째로 <한말글사랑을 펼쳐 온 흐름>에 비추어 보면, 이제까지 우리 글자에다가 중국글자를 섞어서 쓰자는 쪽과 우리 글자인 한글만으로 쓰자는 주장 사이에 끊임없는 말다툼이 있었는데, ‘한글만쓰기’ 쪽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다음 단계인 한말을 쓰는 것, 곧 자칫 묻히고 잊혀지는 ‘한겨레말’을 살아 숨쉬게 할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뜻에서 한글만쓰기가 잘 이뤄진 바탕에서 이제 ‘한말-한글만 쓰기’로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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